류기정 2006. 8
키워드 : 정신분석, 인공지능, 로봇, 반복, 음악
행동으로서의 불안함
책상을 마주보고 두 남자가 앉아 있습니다. 한 남자는 몸을 뒤로 비스듬히 기댄 채 뒤로 팔베개를 하고 있고, 맞은 편 남자는 약간 웅크린 채 다리를 계속 떨고 있습니다. - 얼핏 이 장면을 보기만 해도, 우리는 이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팔베개를 한 남자는 여유롭고 자신만만한 반면, 다리를 떨고 있는 남자는 불안하고 초조해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사람의 심리상태는 무의식적인 제스쳐와 행동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초조한 사람의 행동은 어떤 것일까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다리를 떨거나, 손톱을 깨물거나,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거나, 펜을 돌리거나,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치거나, 혹은 몸을 앞뒤로 흔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행동들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행동들을 그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 것일까요?
초조, 불안할 때 나타나는 행동의 특성은 <반복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일정한 동작을 리드미컬하게 반복합니다. 그런 행위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런 반복적인 동작들이 불안감을 덜어주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기가 울며 보챌 때에도, 어머니들은 손으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며 반복적인 노래를 불러주곤 합니다. 그러면 아기는 금새 안정을 찾곤 하지요. 반복적으로 껌을 씹는 행위는 불안감의 표출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심란할 때, 산책이나 조깅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불안감이 가시기도 합니다. 즉, 어떤 반복적인 행동은 사람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반복적인 행동이 불안감을 줄여준다’라는 명제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우선 질문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반복적인 행동’의 범위는 무엇인지, ‘불안감’이 무엇인지, 그리고 ‘줄여준다’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불안의 생리학적 의미
우선 불안이 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불안은 정신분석적으로 말하자면 리비도 과잉집중으로부터 형성된 감정으로, 일종의 불쾌감입니다.(물론 프로이트의 후기이론에 따르면 불안은 보다 고차원적인 자아의 기능으로 취급되어 지지만, 여기선 병리학적인 만성 불안이 아니라 일시적인 불안감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불쾌감은 정신적 긴장(이는 신경생리학에서 말하는 뉴런의 흥분과 다르지 않습니다.)이 급격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쌓인 상태이며 이는 긴장의 방출(근육이나 다른 뉴런으로)을 통해 해소될 수 있습니다. 생물의 항상성 추구라는 측면에서 보면, 불안은 어떤 긴장요인(표상)이나 내외부적 감각으로부터 생성되는 자극으로부터 기인하며, 생물은 이를 효과적으로 제거함으로써 내부의 항상성(긴장이 낮은 상태)을 유지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를 방출하지 못하거나 해소에 필요한 적절한 표상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즉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 내적 긴장은 정신의 내부 회로를 계속 순환하게 되고, 지속적인 불안상태를 보이게 됩니다.
즉, 불안감을 줄여준다는 것은 이 정신적 긴장을 해소해준다는 의미이며 그 방법에는 두 가지 가능성 - 긴장의 원천을 제거하거나, 긴장을 지속적으로 방출하거나 -이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2차과정과 긴장의 해소
그러므로 운동(근육의 움직임)은 어떤 방식으로든 긴장의 방출에 효과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 운동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무언가 과격한 행동을 하는 것은 이런 내적 긴장을 방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원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운동은 일시적인 효과만을 가져올 뿐입니다. 배가 고파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소리친다고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내적 긴장을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적절한 운동의 형태’로 방출시키는 것이 자아의 역할이며, 이를 <2차 과정>이라고 합니다.
긴장이 높을 때, 자아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표상을 떠올립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떠올린다 - 이것을 <1차 과정>이라고 하지요. 1차 과정으로 생긴 표상을 만족시킬 때, 자아는 더욱 만족감을 느낍니다. 배가 고파 밥을 떠올렸을 때, 자아는 이 표상에 맞는 ‘밥’을 발견하면 만족하지만, 관계없는 ‘자동차’를 발견하면 실망하게 됩니다. 즉, 자아는 1차과정의 결과로 떠오른 표상에 대해 더욱 기대감을 가지게 되며, 이 표상은 긴장의 에너지를 넘겨받아 높은 흥분상태로 대기하다가, 이에 맞는 외부자극을 받아들였을 때 보다 큰 긴장의 해소를 경험합니다. 이 과정이 예측에 따른 만족이며, 자아가 행동을 계획하게 되는 기본 원리입니다.
반복행동을 통한 긴장의 해소
이제 ‘반복행동’이라는 것을 고찰해봅시다. 이 단순한 반복적 행동은 그 기간이 짧고 패턴이 유사한, 단순한 근육운동을 말합니다. 다리를 떨거나 펜을 돌리거나 몸을 흔들거나 하는 행동들이 이에 속합니다. 반복적인 하루의 일과는 지나치게 길기 때문에(그리고 단순한 근육운동이라기엔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반복행동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우리는 왜 반복적인 행동이 불안감을 줄여주는지(없애지는 못하지만) 추론할 수 있습니다. 불안한 상태는 끊임없이 내적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자아는 이를 해소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해결책이 보이지 않거나 해결책을 시도할 수 없을 때 - 불안한 상태는 대체로 그런 상태입니다 - 자아는 긴장을 방출하고자 하며, 가능하면 비교적 효과적인 방법을 택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자아에게는 두 가지 제약사항이 걸리게 됩니다. 긴장을 방출하되 그 상황에서 허용된 방법이어야 하며, 가능하면 많은 긴장을 방출할 수 있는 방법이어야 합니다.
첫 번째 제약으로 인해, 자아는 비교적 작은 운동으로 방출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비교적 만족감이 큰 손가락을 빠는 행위나 자위행위 같은 건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용인된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자아는 이를 억제합니다. 그렇다면 자아는 크기가 작으면서도 용인된, 반복적인 행동을 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반복적인 행동은 긴장의 방출이 다른 행위에 비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일정한 행동을 반복하게 되면, <예측과 적중>이라는 기작을 통해 (무작위적인 행동에 비해) 좀 더 많은 만족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1차 과정, 혹은 예측을 통해 특정표상(반복적 운동)을 떠올리게 되면, 이 표상은 긴장을 얻게 되고(표상을 떠올린다는 현상 자체가 긴장의 획득이며, 이 때 필요한 에너지(긴장)은 내부에 쌓여있던 긴장으로부터 얻어오게 됩니다.), 연이어 그 예측한 동작을 행함으로써 얻어진 지각은 이미 내부에 떠올리고 있던 표상과 일치하게 되고 이 둘은 동반 소멸하면서 만족감을 가져옵니다. 이로 인해 일련의 행위 - 예측, 행위, 적중 - 의 회로가 강화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예측된 표상의 검증이 어째서 더 큰 긴장의 해소를 가져올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설명이 가능합니다. 첫째는 간섭에 의한 감쇄입니다. 같은 표상에 대한 두 개의 다른 흥분은, 어떤 기제의 의해 서로를 억제하거나 감쇄시킨다는 가능성입니다. 내부기원의 표상흥분과 외부기원의 표상흥분은 일종의 ‘반대집중’을 가지고 있어서, 두 신호가 만나 서로를 상쇄할 지도 모릅니다. 이 경우 두 표상으로부터의 긴장이 쌍 소멸되어, 두 배의 긴장해소 효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내부의 자극에 의해서든, 외부의 자극에 의해서든, 흥분되는 표상은 다르지 않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단지 추가적인 ‘현실성 검증’의 신호만이 추가될 뿐이지요. 이 경우에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표상에 상응하는 뉴런은 이미 흥분상태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 또는 주변의) 추가적인 흥분을 억제함으로써 외부기원의 긴장을 무마시키거나, 혹은 이미 흥분되어 있기 때문에 추가되어도 긴장의 총량이 늘어나지는 않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엔 긴장의 해소가 소극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측과 적중>이라는 기작이 자아에게 강한 모티브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본다면, 이런 소극적인 이득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듭니다. 이 기작에 대해선 보다 연구가 필요합니다.
반복의 문화 - 리듬, 춤과 음악
아무튼 만족감을 가져온 행위를 반복하는 것, 이 생물의 기본 행동강령인 만큼, 이런 만족의 싸이클을 발견한 자아는 예측과 적중을 반복하는 ‘반복행위’를 통해 일시적으로나마 효과적인 불안의 제거를 맛보고자 하며, 이런 행위의 고착은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에 대응하는 습관을 형성하게 합니다. 이런 반복에 의한 강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감을 줄 만큼 강화되기도 하는데, 특히 반복적인 행위 - 단순한 춤이나 구호, 동작, 그리고 음악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아는 것을 지각할 때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적이라면 더 효과가 있습니다. 다 함께 반복적인 구호를 따라 외치거나, 단순한 율동을 반복적으로 수행하거나 반복적인 음률이나 비트를 들을 때 그렇습니다. 음악은 특히 반복적인 비트(리듬이라는 것이 원래 반복적입니다)와 예측 가능한 (선율에 의해)멜로디로 인해 효과적으로 내적 긴장을 조성하거나 방출하여 만족감을 줍니다.
전통적인 음악이론에서, 음악이 주는 심리적 쾌감은 ‘긴장의 조성과 해소’라고 말하는데, 이는 화성의 진행의 기본이 됩니다. 즉, 5도로 인해 생긴 긴장감은 1도로 연결되어 해소한다, 혹은 블루스 음계에서 단3도, 단6도의 음정은 음계에 긴장감을 조성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이것은 심리학적인 해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긴장은 불쾌감을 조성하지만, 더 큰 해소에 대한 기대감이라는 역설적인 쾌감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퀸의 ‘we are the champion 의 완결되지 않은 종결이, 찜찜한 기분을 남기게 됩니다.)
우선 리듬을 살펴보면, 적당한 길이의 반복적 리듬은 그 자체만으로 쾌감이 됩니다. 이는 아까 설명한 데로, 예측과 적중의 반복적 쾌감에 의합니다. 너무 간결하고 짧은 2비트 리듬(쿵짝-쿵짝)은 적당한 표상과 긴장을 일으키기에 너무 짧습니다. 그에 비해 적당한 길이의 복잡한 보사노바와 같은 리듬(쿵-따, 쿵쿵따쿵 쿵쿵따 쿵-쿵따쿵)은 보다 많은 긴장과 해소를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이런 적당히 복잡한 리듬은 특히 동양이나 아프리카계의 타악기 연주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리듬을 통해 감정을 고조시키고 몰입하게 하는데 강렬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멜로디에서도 유사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멜로디는 기본적으로 음계나 모드(선법)을 따라 진행되는데, 이러한 규칙은 곡의 느낌(장르)를 규정하게 해 주며 동시에 다음에 진행될 멜로디를 예측가능하게 해줍니다. 예측된 멜로디는 적중에 의한 긴장의 해소를 가져오며, 때로 음계에서 벗어난 진행(텐션 코드나 사이음, 혹은 독창적인(?) 진행)은 긴장과 함께 두 가지 효과(더 큰 해소에 대한 기대와, 새로운 지각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킵니다. 결국 음악은 예측과 적중을 통한 긴장의 조성과 방출을 이용한 심리적 만족과정이며, 이는 초조할 때 다리를 떠는 행위와 밀접하게 관련된 행위인 것입니다.
물론 음악에는 이보다 훨씬 복잡한 장치들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실제로도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특정 화성에 대한 선호도(메이저와 마이너 같은)같은 문제는 매우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이는 보다 섬세한 - 음의 지각 회로의 동조와 간섭 같은 구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 기본적인 배경엔 정신분석적인 쾌-불쾌의 원리가 깔려 있다는 것은 기억해야 합니다.
* 여기서 말한 반복은, 정신분석에서의 <반복강박>과는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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