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Simulation Saturated

artificial mind 2020. 5. 4. 13:00

류기정

 

 

 

" 자, 그럼 지금부터 <프로젝트>의 지난 3년간의 성과에 대해서, H박사의 결과 발표가 있겠습니다."

H박사가 연단에 오르자, 술렁이던 좌중이 그에게 집중하며 조용해졌다. 여기저기서 기자들의 플래쉬가 터지기도 했다.

" 감사합니다. 우선 이 방대한 프로젝트를 위해서 아낌없이 지원해주신 정부와, 역시 참여해 주신 많은 스폰서 기업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성원해주신 덕분에, 지난달 프로젝트는 완료되었고, 이제 그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한 기자가 손을 들었다.

" H박사님, <프로젝트>가 어떤 것이었는지, 간단히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 아시다시피, 이 <프로젝트>는 지구의 역사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해보자는 발상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물리화학적 정보를 토대로, 태양계의 형성시점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의, 그리고 앞으로의 진행사항을 보자는 것이었지요. - 행성의 형성, 생명의 진화, 그리고 문명의 발달과정까지를 모두 시뮬레이션하자는 계획이었습니다."

" ...그게 무슨 뜻인가요? 말하자면, 기온이나 강수량같은 다양한 변수들을 정교한 일련의 함수에 적용시켰다는 말입니까?"

H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 그렇지 않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시뮬레이션 했습니다. 태초에 존재했다고 가정되는 모든 원자와 소립자들, 그리고 그들간의 힘을 모두 계산하여 진행시켰지요.... 모든 화학분자, 존재하는 모래 하나하나, 생물들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만들어지고 계산되었습니다. 평균기온과 개체수를 입력하여 다음 해의 수확을 보는 식이 아니라, 모든 개체들을 다 생성하고, 빗방울 하나, 구름 한 점 간의 상호작용들을 통하여 실제 결과를 얻었지요. 말하자면, 하나의 완전한 세상을 창조한 셈입니다."

좌중에서는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 그, 그렇다면 실로 엄청난 계산량이 필요했을 텐데요...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 프로젝트 초기에는 12만대의 수퍼컴퓨터를 초병렬로 연결하여 진행시켰습니다. 점차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작년에 추가로 19만대를 더 연결시켰지요. 양자컴퓨터의 개발로 인하여 컴퓨터의 계산속도가 상상을 초월할만큼 빨라졌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기획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계산속도는 충분했습니다."

한 물리학자가 손을 들었다.

" 만약 최초에 모든 원자와 에너지를 입력하고 시뮬레이션을 진행시켰다면, 왜 계산량이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게 됩니까? 질량보존법칙이 존재한다면, 그래서 계산해야 할 모든 입자들의 수가 변화가 없다면, 초기단계에서 필요한 계산량이나 나중에 필요한 계산량이나 똑같아야 할 텐데요? "

" 아무리 엄청난 컴퓨팅파워라고 하더라도, 모든 물질을 소립자 수준에서 상호작용을 하나하나 고려해야 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다행하게도, 정보량이 많지 않은 단순한 상태의 물질들에 대해서는 집단적으로 계산하여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지구내부의 맨틀의 움직임을 계산할때는 모든 입자를 하나하나 시뮬레이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두뇌와 같이 극도로 복잡한 대상에 대해서는 거의 원자단위로 시뮬레이션 했지요.... 그러다 보니 생명체가 탄생하고 진화해 갈수록 점점 많은 계산량을 필요로 했습니다."

신경생리학자가 물었다.

" 인간의 두뇌요? 인간을 시뮬레이션 했다는 말입니까? "

" 시뮬레이션이 진행됨에 따라, - 그러니까 작년이었죠 - 그 세계에서 인간도 발생하였습니다. 인간 뿐만 아니라 수천만 종에 해당하는 생물들도 생겨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인간 개개인은 유전적 특성과, 성격, 취미, 사상 등 모든 것을 갖춘 완전한 개체입니다."

카오스 학자가 손을 들었다.

" 카오스 이론과 나비 효과를 모르시지는 않으시겠지요? 그런 식으로 미세한 변수들을 무시할 경우에, 시뮬레이션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의 세계를 그대로 모사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 물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상정한 우주의 초기 상태도 정확하게 진짜 상태와 같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이 시뮬레이션은 현실의 지구와 정확하게 똑같이 반복되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사건들을 보여주지요.... 말하자면 <구조주의적 역사관>이라고나 할까요. 정확히 같은 시기는 아니지만, 시뮬레이션이 진행되면서 우리의 지식과 약 1억년의 오차를 두고 생명체가 발생했습니다. 지구의 대륙 분포도 실제와는 다릅니다. 하지만 70%의 해양면적이라는 점에서는 거의 일치하구요... 실제와는 조금 다르게 생겼지만, 어류와 파충류, 양서류등에 해당하는 생물체들이 진화를 통해 생겨났으며 빙하기도 도래하였습니다. - 세세한 부분에서 좀 다를 순 있겠지만, 일어나게끔 되어 있는 일들은, 결국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

흥분한 듯한 고고학자가 질문을 던졌다.

" 그렇다면 그 세계에서 발생한 인류도 석기와 청동기, 철기 문명을 일으키며 발달하였나요? "

" 그렇습니다. 강가에 위치한 여러 곳에서, 초기 인류가 정확하게 석기,청동기, 철기의 문명단계를 거쳐가며 문명을 건설해가는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문명이 진행됨에 따라 제국시대, 봉건시대, 시민국가의 모습까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와 비교해서 약 100여년 정도 늦긴 했지만, 증기기관을 발명했으며.... 결국 원자력까지도 발견했지요. 또한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는 <마이토콘드리아 이브>가설은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아프리카에 해당하는 열대 대륙에서 최종적으로 현생 인류가 탄생했으니까요."

한 인류학자가 손을 들었다.

" 정말 놀랍군요...... 그 인류는 실제 우리들과 같습니까? 그러니까... 외형이나 해부학적으로, 혹은 심리학적으로 말입니다."

H박사는 물을 한잔 마시고는 대답을 이었다.

" 외형은 아주 약간 다릅니다. 이 인류들은 손가락이 여섯개입니다. 그런 점으로 보아, 인간의 손가락이 다섯개인 것은 진화적인 필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덕분에 이들은 12진법을 처음 개발하였고, 피아노 곡도 보다 어려운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정신적인 구조는.... 아마도 역시 우리와 거의 같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사랑과 증오, 명예, 문화, 언어, 법률과 철학, 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신적 산물들이 존재하니까요. 사회적 구조 역시 매우 흡사합니다."

한 철학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혹시 그들이, 자신들의 세계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을 품진 않던가요? 그들이 세계의 비밀을 눈치챈 적은 없었나요? "

" 물론, 시뮬레이션 속의 철학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의심을 품더군요. 하지만 원리적으로, 그들이 자신들의 세계의 허구성을 밝혀낼 방법은 없습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역시 우리의 세계에 대해서 의심을 해왔지만, 그 진위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지요."

회의실안은 어느덧 열띤 웅성거림으로 소란해져 있었다. 다들 이 프로젝트가 모든 학문의 영역에 가져다 줄 수 있는 성과에 대해서 흥분하고 있었다.

" 궁금하실 게 많으실 것으로 압니다. 결과는 저장되어 있고,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추후에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아마도 이 결과들을 분석하는데에만도 엄청난 인원과 시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제 역사학이란 다른 의미를 지녀야 할 지도 모릅니다. 시뮬레이션 결과는, 우리 역사상의 중대한 사건들이 필연적이었슴을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와 같은 대제국의 흥망성쇠와, 동서양으로 대변되는 두 문화권의 형성뿐 아니라 예수, 히틀러, 아인슈타인과 같은 사람들의 출현 역시 때가 되면 등장하게끔 되어 있었던 것이죠.... "

" H박사. "

그때까지 말없이 듣고 있던 의장이, 입을 열었다.

" 훌륭하오, 박사. 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게 아니잖소?"

의장의 말에, 장내는 일순 조용해졌다. 

" ... 그렇지요. "

" 어떻게 되었죠? "

잠시의 침묵이 이어진 후, H박사가 대답하였다.

" 결과는.....실패입니다. "

" 실패라...."

의장은 의자에 몸을 깊숙히 파묻으며 물었다.

"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

H박사는 물을 한잔 마신뒤, 말을 이었다.

" 아시다시피,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단지 우리 지구와 인류문명을 시뮬레이션해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알고 싶었던 것은 지구의, 우리 인류의 <미래>였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것이었죠....

시뮬레이션은, 인류역사의 커다란 사건들이 문명의 발달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득세, 세계대전, 인종차별, 냉전과 군비경쟁, 탈냉전과 다극화현상, 세차례에 걸친 질병의 재난.... 이 모든 것들이 시기나 형태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을망정, 일어나게끔 되어 있었던 것이죠. - 그렇다면 이 시뮬레이션을 좀 더 진행시키면, 앞으로 일어날 일들 역시 알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어떻게 대체해야 할지 알게 되겠지요. "

 

" 맞습니다....그게 우리의 목표였지요. 도채체 어느 시점에서 실패한 겁니까? "


의장이 물었다.

" 바로 현재까지입니다. 시뮬레이션은 정확하게 현재까지 진행되고 멈추었습니다."

" 왜죠? "

" .....계산량이 폭주했기 때문입니다. 더이상 계산할 수 없었죠."

의장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 거 이상하군요... 왜 하필 딱 현재에 이르러서 계산량이 늘어난 겁니까? 그리고, 그 문제는 컴퓨터를 추가함으로써 해결할 수 없었나요? "

" ....시뮬레이션의 진행이 정확하게 현재에서 멈추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컴퓨터를 추가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지요.... 말하자면, 원칙적으로 더 이상의 진행은 불가능했습니다. 이 우주는, 이런 방식으로미래를 아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 원리적으로 말이죠. "

" 필연적이었다니.....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가는군요. 그 말은, 우리가 어느시점에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더라도, 그 시점 이후의 사건은 시뮬레이션 할 수 없다는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

" 왜죠? "

H박사는 가볍게 숨을 내쉬고는 대답했다.

" 말씀드렸다시피 어떤 사건들은, 적당한 때가 되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건 우리가 시도했던 이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였지요.....시뮬레이션이 진행되면서, 그 안에서도 역시 필연적으로 우리와 같은 프로젝트를 하려는 시도가 생겼습니다. 물론 저 자신이나, 의장님과 같은 인물도 등장했지요. 

그리고 그들 역시 엄청난 컴퓨터를 이용하여 시뮬레이션을 시작했습니다. - 덕분에 현실의 컴퓨터는 그들의 시뮬레이션에 필요한 계산량까지 떠맡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들의 시뮬레이션이 진행되면서, 또한 필연적으로 <그들의 시뮬레이션속의 인류> 역시 시뮬레이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어느정도 문명이 발달하면 자신들의 발달과정을 시뮬레이션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이 순환은 끝없이 반복되었습니다. 시뮬레이션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하고, 그 안에서 또 시뮬레이션을 하고...... 이 무한한 반복의 과정은 무한한 계산량을 요구하였고, 결국 컴퓨터는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마치 카메라가 자신의 영상을 보여주는 TV를 촬영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화면속에 또 자신의 화면이 끝없이 이어지지요... 어떤 정밀한 카메라로도, 그 끝없는 영상을 묘사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말하자면 이미 원리적으로, 이 시뮬레이션은 여기서 멈출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흠.."

" - 이 우주는, 누구도 자신보다 더 빨리 자신의 미래를 알게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