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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노이만 기계

artificial mind 2020. 5. 5. 17:50

류기정

 

 

그가 굳이 곤충과의 최초의 의사사통 대상으로 바퀴벌레를 선택한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바퀴벌레는 10억년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곤충으로써, 인류가 나타나기 이미 훨씬 전부터 이 지구상에 퍼져 생존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초의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바퀴벌레가 이미 지구상에서 생존하기에 완벽한 진화의 정점에 도달해 있다는 말이며, 또한 변함없는 모습으로 지구의 지질학적 규모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가!


그러므로 바퀴벌레가 얘기해 줄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화석보다도, 그 어떤 지질학적 증거보다도 생생하고 풍부할 것이리라. - 어쩌면 공룡이 절멸한 이유는 무엇인지, 대륙의 분할 전에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혹은 인류 이전에 이 지구를 지배했던 다른 지능을 가진 종족이 있었는지….. 그는 이 세기적인 대화에 매우 고무되어 있었다.


그가 곤충과의 의사소통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곤충이라는 존재가 주는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함 때문이었다. 곤충은 그가 알고 있는 다른 모든 지구상의 생물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4개의 다리와 내골격의 익숙한 동물들과는 달리, 곤충들은 단단한 외골격과, 6개의 다리에 날개, 강인한 근육과 갑옷, 기괴한 외형…… 생존을 위해 극단적인 진화의 길을 택한 곤충은, 어린시절부터 그의 관심을 온통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곤충은 진화의 초기에서부터 인간과 갈라져, 선구동물문(발생단계에서 원구가 장차 입이 됨. 곤충, 칠성장어등이 이에 속하며,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척추동물은 후구동물 - 원구가 항문이 됨 - 이다.)의 절정에 올라 마치 두 가지로 갈라진 거대한 나무처럼, 한쪽은 인간으로 끝으로 하는 가지와 한쪽은 곤충을 정점으로 하는 가지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다. 

마치 인간계와 공존하지만 서로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다는 전설의 요정계처럼, 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두 개의 다른 차원의 주인과 같은 셈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인간은 공포와 혐오를 느낀다던가. 많은 여자아이들이 그러하듯, 외모만 본다면 곤충은 인간에게 공포와 혐오를 주기에 충분한 형상이었다. 커다란 겹눈, 긴 더듬이, 미세한 촉각을 가진 긴 강모, 마디진 체절, 그리고 잔인하고 고도로 효율적인 조직체계…. 무엇보다 애벌레에서 번데기를 거처 성충으로 변화하는 변태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성장과정에서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 그것들은 완벽하게 다듬어진 모양이며, 필요이상으로 느껴질 정도의 강력한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곤충들은 이 지구상의 어떤 험한 곳에서도 생존한다. 저 바퀴벌레를 보라! 선캄브리아시대부터 존재했던 저 불멸의 
생존자들은, 외형상 지구를 뒤덮고 있는 듯한 네발짐승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지구상 구석구석을 자신들의 종족으로 가득 채우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수 십년 간의 연구 끝에, 그는 결국 곤충들의 페로몬 언어를 해독해 내었고, 자동 페로몬 인식-합성 기계를 통하여 실시간으로 곤충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역사적인 길을 열었다. 그러나 곤충의 종에 따라 통용되는 페로몬들이 달랐으며, 심지어 불개미와 아프리카 사냥개미간의 언어조차 달랐으므로, 그는 고심 끝에 바퀴벌레와를 그의 첫 대담자로 결정했다.


한 달 전, 그는 테이블 위의 식빵 밑을 기어가던 바퀴벌레를 잡아 그의 언어기계 속에 집어 넣었다.


“ 무슨 짓인가, 잡았으면 날 빨리 죽여라, 인간.”

“ 걱정 말라. 난 너희 종족과의 대화를 원한다. 한달 뒤, 이곳에서 인간을 대표하여 너희 종족의 최고 원로와 대화를 하고 싶다.”

“ 좋다. 대바퀴님께 그렇게 전하겠다. 한 달 뒤 자정, 이곳에서 만나자.” 

“ 좋다. 확실하게 전해라.”


그리하여 한 달이 지난 오늘, 그는 녹화장비와 질문들을 준비해 놓고, 그의 실험실에서 역사적인 첫 만남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정이 되자, 어디선가 수십, 수백마리의 바퀴벌레들이 그의 연구실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사람 손바닥정도의 크기는 될 법한 늙은 갈색바퀴가 등장했다. 겉으로 보기만 해도 심상치 않은 바퀴벌레임이 틀림없었다. 그는 천천히 그 바퀴를 통역 기계 안으로 안내했다. 그 원로바퀴는 보좌바퀴들의 부축을 받으며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


“ 참으로 오랜 세월을 기다려왔소. 인간이여!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 믿었소.”

“ 그렇군. 인간을 대표하여 그 오랜 역사와 생존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런 자리를 마련 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 인간은 같은 지구의 식구임에도 불구하고, 조직적으로 우리를 박멸하려 하기 때문에 매우 섭섭하오. 요즘 수난이 말도 아니라오.”

“ 그 점에 대해선 참으로 유감입니다. 그러나 인류는 잠시 뿐, 그대들의 역사는 끝이 없을 것을 믿습니다.”

“ 우리도 크게 걱정하는 바는 아니라오.”


형식적인 인사가 오간 뒤, 그는 원로바퀴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 보아하니 꽤 오래 사신 듯 한데, 언제부터 살아오셨습니까?”

“ 내 나이는 수십억살 이 넘소. 우리에게 있어 개체의 죽음은 죽음일 수 없소. 우리의 경험과 기억은 개체를 뛰어넘어 하나의 집단으로써 공유되니까. 우리종족의 나이가 곧 나의 나이요.”

“ 저는 늘 진화의 양 극단에 있는 인간과 곤충의 관계를 신비스럽게 생각해 왔습니다. 언제, 어떻게 두 종족은 갈라져 나왔을까요?”

“ .... 역시 그랬군. 언젠가 인간이 그것을 물어올 줄 알았소.”


원로바퀴는 결국 올 것이 왔다는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 ...뭔가, 중요한 계기가 있었나 보군요.”


그 때, 옆에 있던 보좌격의 검은 먹바퀴가 끼어들었다.


“원로님! 우리의 정체를 밝히시는 건….!”

“괜찮네. 이제 와서 밝혀진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미 우리의 계획는 실패했고, 이제는 인류와 함께 공존하는 지구의 식구가 아니던가.”


먹바퀴는 뭐라고 항변하려는 듯 했으나, 곧 물러났다.


" 우리는 인류와 갈라져 나온 게 아니라네. 우리는 전혀 독립적인 종족이지."

" 그게 무슨 말입니까?"

" 자네는 곤충이란 종족을 보면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던가? 마치 이 행성의 다른 생물들과는 다른.."

"그렇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 그것이 절 곤충의 세계에 빠져들 게 한 것이지요. 

곤충들을 바라보노라면, 뭐랄까, 마치 이 곳보다 훨씬 혹독하고 무시무시한 혹성에서 온 외계종족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랬군.... 역시 짐작하고 있었군."

" .......? "

" 눈치챈대로, 우리 곤충들은 지구에서 발생하여 진화한 생물이 아니오."

" 그럼 무엇이란 말입니까?"

" ..... 우리는 15억년 전, 외계의 다른 행성에서부터 왔소." 

" 아주 오래전, 그 별은 이미 지금의 인류 이상의 문명을 이룩하고 있었소. 물론 우주개발과 생명공학, 로봇공학과 나노공학이 발달하게 되었지. 그리고 그들의 행성은 곧 포화상태가 되고 말았소. 그들은 자신들이 이주할 새로운 행성을 찾게 된거요. 하지만, 여전히 빛보다 빠른 운송수단은 없었고, 그들이 직접 별들을 탐사하며 후보지를 물색하기엔 너무나 시간이 많이 필요했지. - 그래서 그들은 대신 로봇을 만들었소. 딱 한 대만 어느 별로 보내더라도, 그 로봇은 스스로 자원을 채취하여 자신과 똑같은 로봇을 복제해 낼 수 있는 자가복제로봇이었지. 그리고 그 별의 생물들의 유전정보를 분석하여, 자신을 그 생물권 속에 녹아들어가도록 설계되었다오. 게다가 필요에 따라 스스로 설계를 변경하여, 아무리 혹독한 환경의 별에 떨어지더라도 최적의 형태로 변형될 수 있는 그런 로봇이었소. "

" 그건.... 이론상 존재하는 폰 노이만 기계가 아닙니까? "

" 그렇지. 당신네 인류도 언젠간 그런 로봇을 만들어 내게 될 것이오. 하지만 이미 그런 폰 노이만 기계가 이미 지구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건 몰랐던 게지. 아무튼 그들은 거의 완벽한 폰 노이만 기계를 만들어서 가능성 있는 행성들에 뿌렸소. 그러면 자동으로 그 기계들은 스스로를 복제하고, 완벽한 형태로 자가변형하여 그 행성의 다른 생물들을 제거하여 그들이 쉽게 이주할 수 있게 준비해 줄 테니까. "

" 그랬군요..... 그렇다면 나중에 쉽게 그 별을 접수할 수 있겠군요. 잔인하지만 참으로 효율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물론, 폰 노이만 기계들은 여러 행성으로 보내졌고, 설계된 데로 스스로를 진화시키며 살아남았소. 그 기계들은 그야 말로 각양각색의 형태로 변형되었지. 성공한 기계들도 있고, 실패하여 모두 파괴된 기계들도 있고, 혹은 그 별의 원래 생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복제를 계속하는 기계들도 있었소. - 하지만 그들을 보낸 이들은 가장 최적인 몇 곳만을 필요로 했소. 그리고 그곳으로 최종 이주했지. 하지만, 다른 별의 폰 노이만 기계들은 그냥 버려지게 된거요."

" 그렇군요.... 이 지구는 다행히도 그 선택에서 벗어났던 것이군요. 당신들은....그때 버려진 채로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는 폰 노이만 머신이었던 거군요!"


늙은 갈색 바퀴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아니오. 이 지구 역시 선택된 몇 개의 별 중 하나라오. 그들은 이 지구로 이주해 와서 살게 되었다오. 그리고 지금도 지구상에 살고 있소."


그는 순간, 머리가 복잡하게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 ....아니...그렇다면.... 우리 인류가 이주해 온 외계종족의 후예란 말입니까? "


갈색바퀴는 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뭔가를 오해하고 있군 그래. 어떤 폰 노이만 기계들은, 기계들을 보낸 그들조차도 어쩔 수 없을만큼 크고 강력하게 변형되기도 했었소. 그들은 오히려 기계들이 점령한 별에 힘겹게 공존해야 할 처지에 놓이기도 했지 - 알겠소? 우리 곤충들이 이주해온 외계종족의 후예요. 바로 인류를 포함한 지구의 다른 동물들이, 알아보기 힘들만큼 변형되어 버린 - 우리가 보낸 폰 노이만 기계들이라오."



-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