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링의 두 번째 테스트
류기정
"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의 테스트야 말로 이번 <튜링의 두번째 테스트>행사의 하이라이트 아니겠습니까? "
방송의 아나운서를 맡은 K가 흥분한 듯 얘기하자, 해설 및 자문의 역할로 나란히 앉아있던 H박사가 말을 받았다.
" 그렇습니다. 오늘은 이미 지난달 언론매체를 통해 튜링의 두번째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를 개발했다고 발표한, M사의 바로 그 휴머노이드가 나오니까요."
" 과연 M사의 새 휴머노이드로 이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군요, 어떻습니까? 해낼 수 있을까요? "
"글쎄요, M사측에서는 자체테스트를 이미 통과했다고 발표했으니 어느정도 기대해도 되겠지요. 오늘은 그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려는 게 아니겠습니까?"
"... 과연 수많은 기자와 학자, 기업가를 포함한 관람객들이 이곳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박사님, 우선 시청자들을 위해서 오늘의 테스트가 어떤 의의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을 좀 해주시겠습니까?"
H박사는 험험, 헛기침을 하고는 대답했다.
" 그러지요. 요즘은 휴머노이드가 일상화되어 있지만, 사실 이런 사람수준의 지능을 가진 휴머노이드는 이십여년 전만 해도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지요. 1950년대부터 시작된 인공지능의 연구는 컴퓨터의 발명과 함께 꾸준히 연구되어 왔지만, 근본적인 통찰의 부재랄까....온갖 어려움에 부딪히고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포기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답니다... 바로 R박사의 휴머노이드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 R박사라면, 마음학(Mindology) 의 대가 말씀이시지요? "
" 대가라기보다는 그 학문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뭏든 R박사의 휴머노이드가 2023년에 드디어 첫번째 튜링테스트를 통과해 낸 것입니다."
" 그 첫번째 튜링테스트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
H박사는 테이블 앞의 물을 조금 들이키고는 얘기를 이었다.
" 아시다시피, 튜링 테스트는 어떤 인공지능 시스템이, 정말로 지능을 갖추었는지 판별할 수 있는 테스트지요... 이 방법은 디지털 컴퓨터의 이론적 설계자인 알런 튜링 박사가 고안해 낸 방법입니다. 테스트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사람이 인공지능과 채팅을 해서, 상대가 사람인지 인공지능인지 구별할 수 없다면, 그 인공지능은 정말로 지능을 가졌다고 인정하는 거지요."
" 굉장히 간단한 방법인데, 그것을 그 때까지 어떤 기계도 통과하지 못했다는게 이상할 정도군요."
" 이 테스트는 단순하지만, 굉장히 통과하기가 어렵습니다. 초창기에는 사람의 대화를 흉내내는 단순한 프로그램으로 통과할 수 있으리라 여겨졌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거든요.. 사람과 같을 정도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려면, 사람과 같은 정도의 지능과 감정, 경험, 사상과 매너, 자존심....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상 정말 사람이 아니고서는 통과하기 어렵지요."
" 그렇다면 R박사의 휴머노이드는 어떻게 통과했을까요?"
"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휴머노이드들은 모두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R박사의 휴머노이드로부터 변형, 개선된 모델들이지요..... Mindology를 공부하시면 알겠지만, R박사는 인간의 정신을 진화론적, 생물학적, 심리학적 발생과정을 철저히 분석하여 휴머노이드를 성장시킨 거랍니다. 유아기서부터 말이죠. - 말하자면 인간의 아기와 같은 수준의 휴머노이드로부터, 하나하나 가르쳐가며 성장시켰던 거지요..."
" 그렇군요.... 그러면 오늘날의 휴머노이드들도 그런식으로 유아형으로 생산되어 성장하는 건가요? "
" 오늘날의 휴머노이드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키워야 한다면 매우 비생산적인 방식이 되겠지요. 오늘날엔 몇몇 정신적 주형이 될만한 휴머노이드들은 성장을 시키고, 그 정신패턴을 대량생산하는 휴머노이드에게 주입시킬 수 있습니다. - 그러면 온전한 지능을 가진 휴머노이드가 바로 출하될 수 있는 겁니다."
" 알겠습니다, 박사님. 그럼 오늘 테스트하게 되는 <튜링의 두번째 테스트>는 어떤 건가요? "
H박사는 다시 물 한모금을 홀짝였다.
" 에.... 당시 R박사의 휴머노이드가 튜링테스트를 통과하긴 했으나, 과연 휴머노이드가 정말로 지능을 가지고 있느냐, 라는 것에 대해서 논란이 많았지요..... 튜링테스트가 과연 지능의 판별방법으로 적합한 것인지, 지능이란게 단지 대화만으로 대변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과연 그 정도의 지능이 '충분한 지능'인지에 대해서 수년간 온갖 토론들이 무성했답니다. 그러자 2025년, R박사는 - 그는 당시 지금의 M사를 창립하면서 대량생산을 준비하고 있었지요... - 새로운 종류의 테스트를 제안했지요. 그게 바로 <튜링의 두번째 테스트>인 겝니다. "
" 그렇다면 이것은 튜링이 제안한 것이 아니었군요? "
K는 고개를 끄덕이며 확인했다.
" 그렇지요, 두번째 테스트는 R박사가 제안한 것입니다. "
" 그럼, 이 두번째 테스트는 무엇을 판단하려는 건가요? "
" 튜링의 첫번째 테스트가 <지능이 있는가>에 관한 테스트였다면, 이 두번째 테스트는 <충분한 지능이 있는가>에 관한 검사법이지요."
" 충분한 지능이란 건 무슨 말이지요? "
" 처음 휴머노이드가 튜링테스트를 통과하자, 학계에서는 지능에 대해서 다시금 고찰하게 되었지요. 우리는 인간의 지능이 전부이며, 이것이 최고라고 생각했었는데, 기계로 만들어진 휴머노이드가 인간의 지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R박사의 휴머노이드가 비록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고는 하나, 그 지능의 수준이 인간의 것과 같다고는 볼 수 없었거든요. - 당시 검사자는 '10살정도의 어린아이일 것이다'라고 판별했으니까요... - 아뭏든, 이 사건을 계기로 과연 충분한 지능수준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지능정도이면 충분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 겁니다. 다시말해 지능의 수준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평가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
" 인간의 지능이 충분하지 않다는 말씀인가요? "
" 만약 외계인이 방문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들이 우리보다 엄청나게 지능수준이 높다면, 그들은 우리가 전혀 지능적이지 못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인간과 우리의 휴머노이드는, 그 외계인들의 초超튜링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할 테구요. 그렇다고 우리가 지능적이지 못한 걸까요? 만약 그들보다 더 똑똑한 종족이 있다면 그들 역시 초초超超튜링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할 테고..... 이런 논의를 거치면서, '과연 객관적으로 지능의 유무를 판별할 수 있는 <충분한 지능>의 조건은 무엇인가' 에 대한 논의가 된 겁니다."
" 그렇군요. - 그렇다면 R박사의 제안은 어떤 방법이었나요? "
" R박사의 아이디어는, 역시 생물학의 기본원리로부터 유추한 것이었지요. 그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도 대답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처럼, <자기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생물이라고 해 봅시다. 그렇다면 새끼를 낳을 수 없는 노새는 생물이 아닌가요? 혹은 불임의 생물은 생물이 아닌 걸까요, 하는 질문을 할 수 있겠지요..... R박사는 이에 대해 '충분한 생물'이란 개념으로 구분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충분한 생물이란, <자기복제할 수 있는 개체를 복제해 낼 수 있는> 것이었지요. 다시 말해, 노새는 생물이긴 하지만 충분한 생물은 아닙니다. 그리고 만약 노새가 새끼를 낳을 순 있지만, 그 새끼는 불임이라면- 이 경우에도 노새는 <충분한 생물>이 아니지요.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새끼를 낳는 경우에야 비로소, 노새는 <충분한 생물>이라 할 수 있는 거랍니다. 생명현상의 안정된 재생산 구조를 확립할 수 있어야만, 지속가능한 충분한생명일 수 있는 거지요."
" 그 개념이 '충분한 지능'과 어떻게 연결되는 건가요? "
" R박사의 충분한 지능이란 이런 것입니다. <어떤 지능체가, <<다른 지능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지능체>>를 만들 수 있다면> - 그 지능체는 충분한 지능을 가졌다고 말하자는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능의 재생산 구조를 형성할 수 있는 수준의 지능을 '충분한 지능'이라고 말한 거지요. "
" 하하, 조금 복잡한 것 같군요. 정리하자면, 그 말은.... 휴머노이드가 충분한지능을 인정받으려면, 다른 휴머노이드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군요? "
" 아니요.... 정확히는 휴머노이드가 <휴머노이드를 만들수 있는 휴머노이드>를 만들었을때, 그 휴머노이드는 충분한 지능을 가진 겁니다. "
" 그렇다면 오늘 M사의 휴머노이드는 <휴머노이드를 만들 수 있는 휴머노이드>를만들어 보인다는 것입니까? "
" 그렇진 않습니다. M사의 휴머노이드는 단지 보통의 휴머노이드만을 만들 뿐이지요."
K는 머리가 혼란해짐을 느꼈다.
"....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충분한 지능>의 정의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M사의 휴머노이드가 충분한 지능을 가졌다고 말할려면, <휴머노이드를 만들 수 있는 휴머노이드>즉, M사의 휴머노이드가 휴머노이드를 만들고, 그 만들어진 휴머노이드가 다시 휴머노이드를 만들어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요? "
H박사는 보일락 말락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 뭔가 오해를 하고 있으신 듯 하군요, 오늘 이 자리에서 검증하고자 하는 것은 M사의 휴머노이드가 충분한 지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 오늘 확인하게 될 것은 과연 M사의 휴머노이드가 다른 휴머노이드를 만들 수 있느냐, 다시말해 M사의 휴머노이드를 만든 우리 인류가, 과연 '충분한 지능'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을 검증하려는 것이니까요... "
End.